문어를 대상으로 한 `고무 팔 착각' 실험에서 가짜 팔(화면 상단)을 자극하자 문어가 이를 자기 팔에 대한 자극으로 인식하고 도망가고 있다. <출처 Current Biology 논문>


내 손이 아닌데, 내 손처럼 느껴진다?

`고무 손 착각' 실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실험은 뇌가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받아들이면, 가짜 손도 진짜 손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실험이다.

먼저 진짜 손을 가린다. 책상에 앉은 사람의 진짜 손은 가림막 뒤에 숨기고, 그 앞에 `고무로 만든 손(가짜 손)'을 올려둔다. 그 다음 두 손을 동시에 만진다. 실험자가 진짜 손과 고무 손을 똑같이 동시에 브러시로 문지르는 것이다.

뇌는 착각한다. 사람은 고무 손이 만져지는 걸 눈으로 보고, 동시에 진짜 손에서 촉감을 느끼니까 뇌는 “아, 저 고무 손이 내 손이구나!”라고 착각하게 된다.

몇 분 지나면 고무 손을 진짜 손처럼 느끼게 되고, 누군가 고무 손을 갑자기 찌르면 놀라거나 움찔하는 반응을 보인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뇌는 `시각 정보(보는 것)'와 `촉각 정보(느끼는 것)'를 함께 처리한다. 두 감각이 동시에 일치하면, 뇌는 그 물체를 내 몸의 일부로 인식하게 된다.

이 실험은 `신체 인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가상현실(VR)'이나 의수 개발에도 응용된다.

그런데 최근엔 문어도 이 착각에 빠진다는 연구가 나와서 더 흥미로워졌다.

이 실험 결과를 발표한 논문은 2025년 7월 21일자 Current Biology에 게재된 `문어의 고무 손 착각'(Rubber arm illusion in octopus)다. 저자는 카와시마 스미레, 이케다 유즈루 등이다.

논문은 문어(Callistoctopus aspilosomatis)를 대상으로 인간의 ‘고무 손 착각’을 변형한 실험을 통해, 문어도 자신의 팔에 대한 `신체 소유감'(body ownership)을 느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인간과 유사한 신체 인식 능력이 무척추동물인 문어에게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발견으로, 신경과학 및 인지과학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신체소유감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 아냐

이 연구는 문어가 인간처럼 자기 신체에 대한 인식(신체 소유감, body ownership)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획기적인 발견이다.

기존에는 신체 소유감이 인간이나 영장류처럼 복잡한 뇌를 가진 동물에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다.

문어는 척추가 없는 무척추동물이며, 뇌 구조도 인간과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무 손 착각에 반응했다는 것은, 신체 인식이 다양한 생물에서 진화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로봇 팔 개발에 적용 가능

문어는 팔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팔 자체에 신경절(ganglia)이 있어 뇌의 명령 없이도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생물학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문어가 ‘이 팔은 내 것’이라는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신체 통합'(body integration)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이는 자율성과 통합성의 균형이라는 신경과학적 난제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문어의 신체 인식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로봇 팔이나 의수 개발에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자신의 일부처럼 느낄 수 있는 인공 팔다리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분산형 신경 시스템을 갖춘 생물의 인지 메커니즘을 모방한 차세대 인공지능 및 로봇 시스템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