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국립대구과학관 실내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해수면 온도를 나타내는 전시물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해양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이로 인해 깊은 곳의 영양분이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용승(Upwelling) 현상이 붕괴되어 해양 생산성(식물성 플랑크톤 및 어류)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태평양에 '영구적인 엘니뇨(Permanent El Niño)' 상태가 올 것이라는 우려마저 제기돼 왔다.
하지만 플라이오세(500만년~250만년전) 퇴적물의 질소 동위원소 분석 결과, 당시 기온이 지금보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승 현상이 붕괴되지 않고 500만 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는 지구 온난화 상황에서도 태평양의 주요 어장과 해양 생태계의 기반인 생물학적 생산성(Biological Productivity)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탄력적(resilient)일 수 있음을 시사해 주목된다.
최근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게재된 플라이오세 이래 열대 동부 태평양의 용승(Persistent eastern equatorial Pacific Ocean upwelling since the warm Pliocene) 제하의 논문에서 이같은 결과가 제시됐다.
플라이오세의 해양 퇴적물에서 질소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기후가 더 따뜻했을 때에도 열대 태평양의 용승(Upwelling)은 붕괴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는 따뜻한 기후가 영구적인 엘니뇨를 유발하여 해양 생산성을 파괴할 것이라는 기존의 예측이 틀린 가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를 비롯해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 매사추세스대학, 막스플랑크 화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Chemistry), 사우샘프턴 대학교 등 다양한 국제 연구기관에 소속된 인물들이다.
해수면이 따듯해 지면서 용승이 제한될 것이라는 기존 학설
해수면이 따뜻해지면서 용승이 제한될 것이라는 예측은 해양의 성층화(Stratification) 현상 때문에 나온다. 용승은 바다 밑의 영양분이 풍부한 차가운 물이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중요한 과정인데, 표면이 따뜻해지면 이 과정이 방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는 핵심은 해수의 밀도와 온도의 관계다.
바닷물은 차가울수록 밀도가 높고, 따뜻할수록 밀도가 낮아진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의 온도가 상승하면, 표면의 따뜻하고 가벼운 물과 심해의 차갑고 무거운 물 사이의 밀도 차이가 더욱 커진다.
이 밀도 차이가 심해지면 해수면 근처에 안정적인 성층(Stratified) 구조가 형성된다. 마치 층이 진 것처럼 물이 섞이지 않고 분리되는 현상이다. 이 층은 깊은 곳의 물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한다.
용승은 주로 바람이나 해류에 의해 심층수가 표면으로 수직으로 혼합되거나 솟아오르는 힘으로 발생하는데, 성층화가 강해지면 이러한 수직 혼합을 깨뜨리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므로, 용승이 약화되거나 제한된다.
용승은 해양 생태계에서 '생산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이것이 제한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심해의 차가운 물은 플랑크톤 성장에 필수적인 질산염, 인산염 같은 영양분을 다량 포함하고 있는데, 용승이 제한되면 이 영양분이 표층으로 공급되지 못해 표층수의 영양분이 고갈된다.
영양분이 줄어들면 해양 먹이 사슬의 기초인 식물성 플랑크톤(Phytoplankton)의 성장이 둔화되고, 이는 결국 이를 먹고 사는 물고기와 기타 해양 생물의 감소로 이어져 전 세계 어업 생산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해수면 온난화가 용승을 제한한다는 것은 해양의 생물학적 심장부에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줄어들어 생태계가 쇠퇴할 위험이 커진다는 의미다.
영구적 엘리뇨?
엘니뇨(El Niño) 현상 중에는 해수면의 온난화와 함께 무역풍(Trade Winds)의 약화 또는 역전이 발생하며, 이 두 가지 주요 과정을 통해 용승(Upwelling)이 방해된다.
우선 무역풍 약화와 용승 동력 상실을 보자.
평상시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강력한 동풍(무역풍)이 해수면을 끌어당겨 서태평양 쪽으로 따뜻한 표층수를 이동시킨다. 이로 인해 동태평양(남미 연안) 해수면의 수위가 낮아지고,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심해의 차가운 물이 표면으로 솟아오르는(용승) 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엘니뇨가 발생하면 이 무역풍이 약해지거나 아예 서쪽에서 동쪽으로 역전된다. 그 결과 해수면을 서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사라져 동태평양 해수면의 수위가 상승하고, 차가운 심층수를 끌어올리는 물리적인 힘(용승 동력)이 사라지거나 크게 약화된다.
다음은 따뜻한 수온층의 확대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서태평양에 쌓여 있던 따뜻한 표층수(Warm Pool)가 무역풍의 약화로 인해 동쪽(남미 연안)으로 역류하며 퍼진다.
이 따뜻한 표층수는 수온약층(Thermocline)을 깊은 곳으로 밀어낸다. 수온약층은 표층의 따뜻한 물과 심층의 차가운 물이 분리되는 경계층인데, 이 층이 깊어지면 용승이 일어나더라도 차가운 심층수가 아닌 여전히 따뜻한 중간층의 물만 솟아오르게 된다.
그 결과 바다 표면이 따뜻한 물로 덮이고, 깊은 곳의 영양분이 풍부한 차가운 물이 표면으로 도달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차단되어 용승이 제한된다.
이 두 가지 과정을 통해 엘니뇨 시기에는 남미 연안의 수온이 상승하고, 해양 생태계의 기초가 되는 영양분 공급이 줄어들어 플랑크톤과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과거에서 미래를 찾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거 플라이오세의 해양 환경을 분석하여 미래 지구 온난화 환경에서 해양 생태계의 탄력성(Resilience)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기존의 비관적인 예측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 연구는 약 533만 년 전부터 258만 년 전까지 이어진 플라이오세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시기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CO2)가 현재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았고, 지구 평균 기온도 현재보다 따뜻했기 때문에 미래의 온난화된 지구를 예측할 수 있는 최적의 자연 실험실로 간주된다.
연구팀은 따뜻한 기후가 해양의 용승(Upwelling) 현상을 붕괴시켜 태평양 어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기존 가설을 검증하고자 했다.
연구팀은 과거 해양의 상태를 재구성하기 위해 심해 퇴적물 코어에서 채취한 유공충(Foraminifera)이라는 단세포 플랑크톤의 화석 껍데기에 갇혀 있는 질소 동위원소(δ15N)의 비율을 측정했다.
질소 동위원소 비율은 과거 해수 표면의 질산염 농도를 알려주는 지화학적 지문(Geochemical Fingerprint) 역할을 한다. 질산염은 플랑크톤 성장의 주요 영양분이며, 용승이 활발해야 풍부하게 공급된다.
분석 결과, 연구팀은 안정적 영향분 공급과 지속적 용승의 단서를 확인했다.
즉 플라이오세의 따뜻한 시기에도 동부 열대 태평양(Eastern Equatorial Pacific) 표층수의 질산염 농도가 감소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심해의 영양분을 끌어올리는 용승이 붕괴되거나 크게 약화되지 않고 현재와 유사한 강도로 500만 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 연구는 지구 온난화가 곧 동태평양에 영구적인 엘니뇨 상태를 유발하여 해양 생산성을 파괴할 것이라는 기존의 유력한 모델 예측에 강력하게 반박한다. 대신, 용승을 통제하는 해양 시스템이 기후 변화에 대해 생각보다 더 견고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태평양은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어장 중 하나이며, 여기서 용승이 안정적이었다는 것은 미래의 따뜻한 기후에서도 해양 먹이 사슬의 기초인 플랑크톤 생태계와 어업 생산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이 결과는 미래 해양을 예측하는 기후 모델들이 '용승 붕괴'라는 극단적인 시나리오 대신 '안정적인 용승' 시나리오를 반영하도록 수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한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제시하지만, 현재의 위협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즉 플라이오세 때의 기후 변화는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난 자연적 변화였던 반면, 현재의 온난화는 그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해양 산성화나 과도한 어획 같은 현대적 위협들은 여전히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기도 하다.
윤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