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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미끄럽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과학자들은 수백 년 동안 그 이유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전통적인 설명들은 압력이나 마찰열 때문에 얇은 물 층이 생겨 윤활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들은 극도로 낮은 온도와 조건에서 발생하는 미끄러움을 설명하지 못했다.

최근 한 연구팀은 분자 시뮬레이션을 통해 얼음의 미끄러움에 대한 혁신적인 설명을 제시했다. 이들은 얼음의 낮은 마찰이 '녹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냉각 변위 구동 비정질화 (Cold, displacement-driven amorphization)'라는 현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025년 8월 7일자 피지컬리뷰레터스에 실린 `미끄러지는 얼음의 냉각 자가 윤활' (Cold Self-Lubrication of Sliding Ice) 제하의 논문에서다.

이 논문은 `왜 얼음이 미끄러운가?'라는 오랜 질문에 대해 기존의 상식적인 설명을 뒤집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이에 의하면 얼음은 녹아서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미끄러질 때 발생하는 매우 낮은 마찰(미끄러움)의 원인을 '표면의 물 층'이라고 생각해 왔다.

기존의 가설, 즉 전통적인 설명은 크게 세 가지다.

첫번째 압력 녹음(Pressure Melting)이다. 스케이트나 타이어가 가하는 압력 때문에 얼음이 녹아 얇은 물 층이 생기고, 이 물 층이 윤활제 역할을 한다.

두번째는 마찰열 녹음(Frictional Heat Melting)이다. 미끄러질 때 발생하는 마찰열 때문에 얼음이 녹아 물 층이 생긴다.

세번째는 표면수다. 녹는점 이하에서도 얼음 표면에 '준액체층(quasi-liquid layer)'이 미리 존재한다.

논문이 제시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은 분자 시뮬레이션을 통해 얼음이 낮은 마찰을 보이는 주된 이유가 열역학적인 녹음(Melting)이 아니며, 대신 '냉각 변위 구동 비정질화 (Cold, displacement-driven amorphization)' 현상이다.

즉 물체가 얼음 표면 위를 미끄러지면, 물체가 가하는 힘(변위)과 정전기적 상호작용이 얼음 표면 분자들의 규칙적인 결정 구조를 파괴한다.

이로 인해 얼음 표면이 마치 액체처럼 무질서하고 이동성이 높은 얇은 층(비정질 얼음)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는 녹는점과 무관하게 발생한다.

이렇게 생성된 비정질 층이 윤활제 역할을 하여 마찰이 매우 낮아진다.

이 메커니즘은 기존의 녹음 가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극도로 낮은 온도'(예: 절대 영도 근처)에서도 얼음 표면이 미끄러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극저온에서는 녹음에 필요한 열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얼음의 마찰(미끄러움)에 대한 수백 년 된 통념을 뒤집고, 얼음의 윤활이 온도와 압력에 의한 '녹음(Melting)'이 아닌, 물체의 움직임(변위)과 표면 상호작용에 의한 '구조적인 액체화(Cold Liquefaction)'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주목을 끈다.

윤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