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바다거북. NOAA National Marine Sanctuaries

기후 변화가 파충류의 성별 체계를 무너뜨려, 번식이 불가능해지는 '성(性)적 종말(Sexpocalypse)'이 닥칠 수 있다는 생태학적 위기감을 알리는 연구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파충류 종의 경우, 새끼가 수컷으로 자랄지 암컷으로 자랄지는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푸른바다거북의 경우 알을 묻는 모래의 온도가 부화 중 중요한 시기에 약 29도(섭씨)이면 새끼는 암컷과 수컷이 반반씩 섞여서 부화한다. 하지만 둥지 온도가 높을수록 암컷의 비율이 더 높아진다.

이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소속 생물학자인 마이클 젠슨 등이 커런트 바이올로지 2018년 8월호에 발표한 `지구 온난화와 세계 최대 바다거북 집단 중 하나의 암컷화' (Environmental Warming and Feminization of One of the Largest Marine Turtle Populations in the World) 제목의 논문에서 나타났다.

연구결과는 충격적이다.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푸른바다거북 개체군을 조사한 결과,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북부 지역(Howick Group 부근)에서 태어난 어린 푸른바다거북의 99.1%가 암컷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거북의 경우 86.8%가 암컷)

기온이 낮은 남부 지역 개체군의 암컷 비율은 약 65~69%로, 북부보다 훨씬 균형 잡힌 성비를 보였다.

연구진은 지난 20년 이상 북부 지역에서 태어난 거북들이 거의 대부분 암컷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는 암컷이 많아 산란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가까운 미래에 수컷이 완전히 사라지면 번식이 중단되어 개체군 자체가 붕괴(Extinction)될 수 있다.

현재의 기온 상승 속도가 바다거북의 진화적 적응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인간의 직접적인 개입(둥지 그늘막 설치 등) 없이는 이 종을 보호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악어의 경우는 정반대다. 알이 32도(섭씨)보다 약간 낮은 온도에서 부화하면 수컷과 암컷이 반반씩 섞여서 부화한다.

이 온도보다 높아지면 수컷이 더 많이 부화한다. 온도가 충분히 높아지면 암컷의 비율이 다시 높아진다.

학자들은 2100년에 가면 악어의 세대가 거의 암수 한 세대로만 구성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지아 대학교의 사만다 보크(Samantha Bock)와 벤자민 패럿(Benjamin Parrott) 교수팀이 202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다.

논문 제목은 둥지 온도의 시공간적 변화와 악어 종의 성비(Spatial and temporal variation in nest temperatures forecasts sex ratio skews in a crocodilian with environmental sex determination)인데, 영국 왕립학회 회보 B에 2020년 4월 발표됐다.

연구팀은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 지역의 아메리카 악어 둥지 86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악어는 약 32.5°C ~ 33.5°C 사이에서 주로 수컷이 태어나고, 이보다 낮거나 높은 온도에서는 암컷이 태어나는 독특한 특성이 발견됐다.

연구팀이 기후 변화 모델(연방 정부의 기온 전망 수치)을 적용해 본 결과, 2100년까지 둥지 온도가 약 1.6°C에서 3.7°C 가량 상승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미세하게 온도가 오르면 수컷이 태어나는 적정 온도 범위를 벗어나게 되어, 부화하는 새끼의 최대 98%~100%가 암컷이 되는 극단적인 성비 불균형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의 18일자 투데이 인 사이언스에 따르면 과학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프레스턴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유성 생식을 하는 파충류의 세대가 암수 한 세대로 극명하게 치우치게 된다면, 이러한 불균형이 종의 멸종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짝짓기 기회가 줄어들고, 살아남은 개체들이 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일부 종은 따뜻해지는 기온에 맞춰 둥지를 짓는 습성을 조절할 수 있을 가능성은 있다. 다양한 기후에 서식하는 야생 바다거북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어미 거북이 주변 환경에 따라 알을 묻는 위치를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둥지 행동을 바꾸려면 모든 종이 둥지를 지을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종들이 인간 활동으로 인해 서식지를 급격히 잃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아 대학교의 생태학자 벤자민 패럿은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이주가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워싱턴 DC 사람들이 포토맥 강에 악어가 있는 것을 용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에 말했다.

윤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