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소재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데리아 소재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시찰을 마지막으로 3박 6일간의 순방 일정을 마쳤다.
이번 순방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담이었지만 상징성으로 놓고 보면 한화오션 소유 필리조선소 방문이 최고의 장면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에 따른 미국의 변화가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들었지만 미국 조선산업 부흥을 돕겠다는 우리측 MASGA(미국의 조선산업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전략이 먹히면서 양국의 동맹이 군사를 넘어 산업, 경제 과학기술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조선업이라는 일견 사양산업처럼 보였던 분야가 왜 이토록 중요한지는 역사가 입증한다. 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해 온 대항해시대 이후의 글로벌 세력 판도 말이다. 해양 지배력을 유지 및 강화하겠다는 트럼프의 `해양책략'에서 군함 및 상선 제조는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린란드 점령, 파나마운하 지배, 멕시코만의 이름을 아메리카만으로 변경 등 일련의 움직임 모두 여기서 파생된 것들이다.
조선 강국이 곧 패권 국가
해양제국의 시작을 알리는 대항해시대(15세기~17세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대양 탐험의 선구자로서 카라벨과 갤리온 같은 선박으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항해하는데 성공했다.
15세기 중반, 포르투갈의 항해왕자 엔히크의 후원으로 어선을 개조해 개발된 카라벨은 2~3개의 삼각돛을 달아 역풍에도 항해 가능한 일대 혁신이었다. 좁고 타원형의 선체 덕분에 빠르고 조작이 쉬웠다. 소형 선박이라 화물 적재량은 제한적이었지만, 탐험에는 적합했다. 식민지 개척, 세계 무역망 형성, 해상 지배력 확보를 가능케했다.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 유명한 탐험가들이 사용했다.
갤리온은 복층 구조로, 상갑판과 하갑판에 대포를 배치할 수 있어 군함과 상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케 했다. 길이 약 30~40m, 무게는 수백 톤에서 1000톤 이상까지 다양했는데, 수십 개의 대포를 탑재해 해적이나 적국의 공격에 대비했다.
금, 은, 향신료, 식량 등 대량의 화물을 실을 수 있어 대서양 무역의 핵심 선박으로 역할을 했다. 유명한 스페인 무적함대(Armada)의 주력 선박이다.
이어서 열린 범선의 시대(17세기~19세기)는 해군력이 곧 세계 영향력의 상징이 되던 시기다.
네덜란드는 적재함을 최대로 키운 플루트선을 통해 상업용 조선 기술을 선도하며 무역 효율 극대화했고, 영국은 전열함(ship-of-the-line)을 통해 해군 강국으로 부상했다. 전열함이란 이름 그대로, 해전에서 함대가 일렬로 늘어서 적과 마주하며 측면의 대포를 일제히 발사하는 ‘전열 전술(line of battle)’에 최적화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산업혁명 (19세기)은 조선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이어졌다. 영국은 철제 선체와 증기 추진 선박 개발했고, 미국은 증기 추진과 해군 공학에서 혁신을 이루며 조선 강국으로 부상했다.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조선 기술은 전략적 자산이 되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리버티선을 대량 생산하며 세계 최대 조선국으로 부상했다. 리버티선(Liberty Ship)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대량 생산한 전시 화물선으로, 연합군의 물자 수송을 담당하며 전쟁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박이다. `자유의 배'라는 이름처럼, 자유 세계를 지키기 위한 산업의 상징으로 불렸다.
2차세계 대전 중 미국은 마치 포드자동차가 T모델을 대량으로 뽑아냈듯이 선박을 지어냈으니 당연 세계 최대의 조선 강국으로 우뚝 섰던 것이다.
일본 역시 전후 상업용 조선 분야에서 세계 선두로 부상하면서 1970년대에는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소련은 군사 중심의 조선 기술 발전을 꾀하며 잠수함과 쇄빙선 등 특수 선박 개발에 강점을 보였다.
미국 조선업의 영광과 침몰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의 패권은 한국으로 넘어오게 된다.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상업용 조선강국이다. LNG 운반선, 컨테이너선, 해양 플랜트 등에서 선도하고 있다. 군사용 선박에서도 한화오션을 중심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중국이 조선 능력을 급속히 확장하며 상업 및 군사 분야에서 양적으로는 이미 경쟁자가 없는 상태로 커졌다. 상용 선박의 경우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이미 70%를 상회하고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 핵잠수함 등 첨단 군함 중심의 조선 기술 유지하고 있지만 기존 함정에 대한 유지보수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관련산업이 몰락한 상태다.
한국에 손내미는 미국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도전을 뿌리쳐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조선산업의 부흥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다. 선박은 세계 무역의 80% 이상을 운송하고 있고, 해군은 국가 이익을 보호하고 영향력을 투사하는 수단이다.
미국이 조선산업 재건에 나선 이유는 단순한 경제적 동기뿐 아니라 국가 안보, 공급망 안정, 기술 자립 등 복합적인 전략적 필요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최근 중국의 해군력 급성장과 남중국해·태평양에서의 긴장 고조로 인해 자국 조선 능력의 유지 및 강화가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또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조선·해운·물류 인프라의 자립 필요성이 대두됐고, 특히 상업용 선박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위기 시 물류 마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걸 깨닫게 된다. 미국 정부는 이를 `경제 안보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자국내 조선소 재건과 기술 투자를 추진 중이다.
쇠퇴했던 조선업을 부활시켜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을 도모하는 정책적 목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근거지인 러스트벨트의 한 축이 바로 조선소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조선산업을 다시 일으키는데 있어 우리나라는 최적의 파트너다. 우리나라 조선회사들은 고부가가치 선박의 절대 강자로서 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FPSO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정밀한 설계, 높은 품질, 납기 준수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선두다.
누가 황금의 기회를 거머쥘 것인가
가히 한 시대에 한 번 올까말까한 황금 기회를 과연 누가 거머쥘 것인지도 관심이다. 이 대목에서 관련 업계 안팎에서 현대도 아니고 삼성도 아닌 한화가 치고 나가고 있는데 주목하는 기류다.
한화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부활시키고 싶어하는 러스트벨트의 필리조선소(필라델피아 소재)를 인수함으로써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또 미국 국적의 해운 계열사도 움직이고 있다.
한화오션의 거제도 조선소는 이미 미국 함정에 대한 MRO(유지보수) 프로젝트를 수주해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미 해군 경쟁력 유지에 깊숙히 발을 담근 모양새다.
이에 따라 특유의 빠른 의사결정과 강한 실행력을 통해 그룹의 활력을 높히고 있는 김승연회장, 김동관 부회장 등 한화그룹 수뇌부에 대한 재평가가 경영계 안팎에서 꾸준히 확산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