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과거 대규모 화산 폭발이 지구 기후에 미친 냉각 효과를 관찰한 결과, 충분한 양의 에어로졸이 지구를 냉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사진은 필리핀 화산 폭발 장면. <NOAA>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전제아래 다양한 지오엔지니어링 기법들이 모색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9일(현지시간) 전문지(Frontiers in Science)에 게재된 지오엔지니어링 논문은 40명이 넘는 국제 극지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작성됐는데, 주요 저자는 △마틴 시거트(Martin Siegert): 영국 엑서터 대학교 교수 △헤이디 세베스트르(Heïdi Sevestre): 북극 모니터링 및 평가 프로그램 소속 △마이클 J. 벤틀리(Michael J. Bentley): 영국 더럼 대학교 교수 등이다.

이 논문의 공식 제목은 "Safeguarding the polar regions from dangerous geoengineering: a critical assessment of proposed concepts and future prospects"다.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은 지구온난화로부터 극지방을 보호하기 위해 제안된 5가지 지오엔지니어링(Geoengineering) 기술에 대한 비판적 평가다. 40명이 넘는 과학자들은 이 기술들이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며,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위험한 도박

논문은 지오엔지니어링 기술이 기후 변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와 비용이 필요하고, 예상치 못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기술들이 위험한 도박(dangerous gamble)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린다.

해수 펌핑 (Sea Water Pumping)

해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얼음층을 인위적으로 두껍게 만드는 방법이다.

문제는 필요한 규모로 작동시키려면 수백만 개의 펌프가 필요하며, 얼음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파괴로 인해 기술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극지방의 얼음, 특히 북극해의 해빙(sea ice)은 단단하게 고정된 한 덩어리가 아니다. 마치 거대한 퍼즐 조각처럼 바람, 해류, 조류의 영향으로 항상 움직이고, 서로 충돌하고, 쪼개지고, 다시 합쳐진다.

이런 역동적인 특성 때문에 '해수 펌핑' 기술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해수를 끌어올리는 펌프와 파이프는 안정적인 지반 위에 설치되어야 하지만 얼음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갈라지기 때문에, 펌프와 파이프라인이 부서지거나 서로 분리될 위험이 매우 크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충돌하면 설치된 장비들이 파손될 수밖에 없다.

기술적으로 성공하려면, 북극해 전체를 덮을 만큼 방대한 규모의 펌프를 설치해야 한다. 논문은 수백만 대의 펌프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수많은 펌프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얼음 위에서 고장 나고 파괴될 때마다 이를 수리하고 교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펌프를 통해 얼린 물이 새로운 얼음 층을 형성하더라도, 이 얼음은 기존의 얼음처럼 주변의 힘에 의해 쉽게 갈라지고 분리된다. 따라서 안정적이고 두꺼운 하나의 얼음층을 만드는 대신, 계속해서 쪼개지는 작은 얼음 조각들을 무한히 생산하는 결과만 낳게 된다.

결론적으로, '움직이는 강물 위에 벽돌을 쌓는 것'과 같다. 극지방의 얼음은 정적인 지형이 아니기 때문에, 그 위에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해저 커튼 설치 (Subsea Curtains)

빙하 아래 따뜻한 바닷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해저에 거대한 커튼을 설치하는 방법이다.

해양 생물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고, 해저 생태계를 교란하며, 이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데 엄청난 물류적,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

반사성 유리구슬 살포 (Reflective Glass Beads)

얼음과 눈 위에 태양 빛을 반사하는 작은 유리구슬을 뿌리는 방법이다.

구슬이 얼음과 섞이면서 오히려 얼음의 알베도(반사율)를 감소시켜 열 흡수를 증가시킬 수 있으며,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논문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유리구슬이 완벽하게 깨끗한 상태로 얼음 표면에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리구슬은 주변의 먼지, 이물질, 미세한 얼음 파편과 섞이게 된다. 이렇게 오염된 유리구슬은 원래의 투명하거나 흰색의 특성을 잃고 점차 어두워진다. 어두워진 유리구슬은 태양광을 반사하기보다는 오히려 흡수하게 된다. 마치 깨끗한 눈밭에 흙을 뿌리면 그 부분이 더 빨리 녹는 것과 같은 원리다.

유리구슬이 오염되면서 얼음과 눈의 전체적인 알베도를 낮추게 되고, 이로 인해 얼음 표면이 태양열을 더 많이 흡수하여 예상했던 효과와 정반대로 얼음이 더 빨리 녹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기술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환경적 오염과 섞여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논문의 주요 비판이다.

성층권 에어로졸 살포 (Stratospheric Aerosol Injection)

성층권에 황산염 입자를 주입하여 햇빛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이지만, 극지방의 기온을 낮추는 대신 다른 지역의 기후 패턴을 교란하여 가뭄이나 홍수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오존층을 파괴할 가능성이 크다.

이 기술의 원리는 화산 폭발 현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대규모 화산이 폭발하면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SO2​) 가스가 성층권으로 분출된다.

성층권의 이산화황 가스는 공기 중의 수분과 반응하여 아주 작은 황산염(SO4​) 입자(에어로졸)를 형성하는데, 이 황산염 에어로졸은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광을 효율적으로 반사하고 산란시킨다.

결과적으로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가 줄어들어 지구의 평균 온도가 낮아지게 된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 후 지구 온도가 약 2년간 0.5°C가량 낮아졌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학자들은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 현상을 모방하여, 항공기, 풍선, 또는 포탄을 이용해 성층권에 직접 이산화황 또는 황산염 입자를 살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구의 온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방법은 다른 지오엔지니어링 기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지만, 기후 시스템의 복잡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심각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성층권에 황산염 입자를 주입하여 햇빛을 차단하는 방법은 지구 전체의 태양 에너지 흐름을 바꾸기 때문에, 한 지역은 시원해지지만 다른 지역은 오히려 가뭄이나 홍수를 겪는 등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구의 기후는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기와 해양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교환하며 움직인다. 특정 지역의 태양 복사량을 인위적으로 줄이면, 이 지역의 기온과 기압 변화가 전 세계적인 대기 순환과 해양 순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열대 지역은 증발량이 감소하고 대기 순환이 약해져 강수량이 줄어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농업에 필수적인 몬순(monsoon) 현상이 약화되어 식량 생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극지방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에어로졸을 살포하면, 다른 지역의 온도가 더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등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은 그 영향이 매우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고 경고한다. 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다 전혀 다른 지역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다른 지역의 기후를 교란한다'는 의미다.

빙하 아래 물 제거 (Subglacial Water Removal)

빙하 바닥의 물을 빼내 빙하의 미끄러짐을 늦추는 방법이다.

빙하 아래의 고유한 미생물 생태계를 파괴하고 오염시킬 수 있으며, 빙하의 거대한 규모를 고려할 때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빙하 바닥의 물을 빼내는 방법은 마찰력 증가를 통해 빙하의 움직임을 늦추는 원리를 이용한다.

빙하의 바닥과 지반 사이에는 물이 존재한다. 이 물은 마치 윤활유처럼 작용하여 빙하가 지반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것을 돕는다. 빙하의 무게와 온도로 인해 하단부의 얼음이 녹으면서 이 물이 생성된다.

이 기술은 빙하의 미끄러짐을 늦추기 위해 드릴링을 통해 빙하 바닥의 물을 밖으로 빼내거나, 빙하 내부의 차가운 공기를 주입하여 물을 다시 얼리는 방식을 제안한다.

물을 제거하면 빙하 바닥과 지반 사이의 마찰력이 크게 증가한다. 마찰력이 커지면 빙하가 지반 위를 미끄러지는 속도가 줄어들거나 멈추게 되어, 해양으로 빠져나가는 빙하의 양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일부 작은 빙하에만 적용 가능하며, 그린란드나 남극의 거대한 빙하 전체를 늦추는 데에는 필요한 규모를 감당할 수 없다.

빙하 바닥에는 고유한 미생물 생태계가 존재할 수 있으며, 물을 빼내는 과정에서 이를 파괴하거나 오염시킬 수 있다.

깊은 빙하 아래까지 접근하여 물을 빼내는 기술 자체가 매우 어렵고, 엄청난 비용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윤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