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 된 선술집의 흔적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고대 수메르 문명은 밀물과 썰물(조수) 덕분에 쉽게 탄생했고, 조수의 이점이 사라지면서 그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도시국가로 완성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대문명의 발흥에 관한 기존 가설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어서 논의의 진전이 주목된다.

최근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에 게재된 `조수의 밀물과 썰물이 수메르 문명을 갑자기 시작시켰을 수 있다' (The rise and fall of tides may have jump-started the Sumerian civilization) 제하의 논문에서다.

이 논문은 수메르 문명이 번성하게 된 주요 원인이 `인간의 대규모 노력'이 아니라, 자연이 제공한 완벽한 환경 조건(조수의 리듬)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논문은 약 7000년 전에는 페르시아만의 해수면이 높았고, 해안선이 현재보다 메소포타미아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과학적 조사에 기반한다.

이 시기에 조수(밀물과 썰물)가 하루에 두 번씩 민물(담수)을 유프라테스강 하류의 수로로 밀어 올렸다.

따라서 초기 수메르 정착민들은 복잡하고 거대한 인공 수로 시스템을 만들 필요 없이, 조수의 힘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농지에 물을 댈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쉽게 식량이 풍족해져 인구가 늘고 사회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고 논문은 주장한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물이 토사(흙)를 계속 쌓아 올리자, 해안선이 바다 쪽으로 밀려나 조수가 내륙으로 들어오는 경로가 차단됐다.

조수에 의한 자연 관개가 사라지면서 식량 생산에 큰 위기가 닥쳤고, 수메르인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로소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인공 관개 시스템을 건설해야 했다고 논문은 주장한다.

이 대규모 관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통제하기 위한 필요성이 중앙집권적 정부, 관료제, 그리고 강력한 국가 시스템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기존 가설의 약점 보완



수메르문명의 발상에 대한 기존 가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가설은 관개 가설 (Hydraulic or Irrigation Hypothesis)이다.

이 가설은 건조하거나 반건조 지역(특히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중국 황허 유역 등)에서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위해서는 대규모 관개 시스템이 필수적이었다는 전제하에 제기됐다. 이러한 대규모 관개 시스템(수로, 댐, 제방)을 건설,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중앙집권적 조직과 관료제가 필요했고, 이 필요성이 바로 국가(State)와 도시 문명의 탄생을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고대 문명이 대규모 관개 시스템의 필요성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이 가설은 약화됐다.

무역 및 교환 가설도 제기됐다. 이 가설은 자원의 불균형을 해결하려는 경제적 필요가 문명 발전을 촉진했다고 본다.

즉 초기 문명 중심지(특히 메소포타미아나, 마야)는 비옥한 농토는 가졌지만, 목재 광물(금속) 석재 등 필수 자원이 부족했다. 이러한 부족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장거리 무역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행정 구조와 경제 전문화, 그리고 계층화가 발생하여 국가 규모의 문명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전쟁 및 인구 압력 가설도 있다.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갈등이 복잡한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농업혁명 이후 인구가 증가하면서 토지, 물, 식량 자원에 대한 경쟁과 갈등(전쟁)이 심화돼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강력하고 집중화된 지도력과 군사 조직이 필요해졌으며, 정복된 집단을 관리하기 위한 계층 구조가 확립되면서 문명이 발흥했다는 주장이다.

새로운 가설의 다학제적 근거

새 가설은 과거의 지리적 환경에 대한 증거를 활용했다.

즉 기원전 5000년경 수메르 문명이 발흥하던 시기에, 지구의 해수면이 상승해 페르시아만이 현재보다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고해수면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

또 고지질학적 데이터에 따르면, 당시의 해안선은 수메르의 초기 정착지 근처까지 닿아 있었으며, 이는 조수 간만의 영향이 강 하류 지역까지 미쳤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연구팀은 고대의 지형 조건(얕은 경사와 넓은 강 하구)을 바탕으로 수문학적 모델링을 수행했다.

모델링 결과, 페르시아만의 조수가 담수(민물)를 강 상류 지역으로 밀어 올리는 현상이 발생하여, 농업 지역에 대한 자연적인 관개 시스템이 가능했음을 입증했다.

조수는 하루에 두 번씩 일정한 간격으로 물을 제공했기 때문에, 초기 정착민들이 복잡한 공학 기술 없이도 물을 쉽게 끌어다 쓸 수 있었던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물 공급원이었다는 점을 제시했다.

지질학적 증거 외에, 문명의 초기 모습과 문화적 기록도 간접적인 근거로 활용됐다.

수메르 초기 정착지에는 대규모의 복잡한 관개 시설을 건설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한 상태다. 이는 당시의 농업이 강물과 조수의 상호 작용에 의존하는 간단한 수로만으로도 충분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수메르 신화에 나타나는 물과 관련된 신들(예: 엔키)에 대한 숭배나 홍수 신화 등이, 조수의 예측 불가능한 역동성과 강 하구의 짠물-민물 경계가 끊임없이 변했던 환경을 반영하는 문화적 기록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문명의 환경 결정론 강화

문명 발전을 순전히 인간의 독창성이나 사회적 압력의 결과로 보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조수, 해수면 변동 등 자연현상의 변화가 문명의 주요한 촉매였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새 논문은 각광을 받고 있다.

초기 문명이 자연적인 이점(조수 관개) 덕분에 쉽게 번성했으며, 이후 환경 변화(조수 접근 차단)에 대한 대응으로서 복잡한 국가 시스템이 탄생했다는 보다 정교한 모델을 제시하여, 문명 발흥의 원인을 다각화한 것이다.

이 연구는 특히 천체물리학자가 주도하여 지질학, 수문학, 고고학을 결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혁신적인 연구다. 조수 역학 모델링과 고고학적 증거를 연결함으로써 역사 연구에 물리학적, 지구과학적 엄밀성을 부여했다는 의미도 지닌다는 평가다.

이 연구는 다른 고대 문명(인더스 문명, 이집트 문명 등)의 발흥 과정에서도 미시적인 환경 요인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윤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