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시대는 전기로 움직인다. 대규모 연산이 필요한 AI 산업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전력을 소비하고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전기차 역시 빠르게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기 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논쟁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기를 만드는 것보다 더 시급한 난제가 있다. 바로 필요한 곳으로 전기를 보내는 일이다. 만약 우리에게 전기 위기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생산이 아니라 송전에서 먼저 발생할 것이다.

수도권의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비해 증설하려던 동서울 변전소가 좋은 예다. 주민 반대와 이에 호응한 지자체와의 행정소송으로 4년 넘게 발목을 잡혀 있다.

발전소는 2년이면 가능하지만 송전선로 하나를 건설하는 데는 10년이 걸리곤 한다.

AI 시대, 우리는 수도권에 필요한 전기를 끌어올 송전로를 제때 확보할 수 있을까? 전력망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달려 있다. 전력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와 사회수용성이 필요한 때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대안은 바다 너머에서 몰려오는 전기...오션 그리드의 패러다임

기존에 사용되던 육상 중심 전력망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나온 대안이 해상 전력망이다. 해상 전력망은 상대적으로 주민들의 반발이 적어 짧은 시간 안에 구축할수 있고, 현재 호남권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에 공급하기에 적합하다.

그중에서도 2030년까지 새만금에서 서화성 구간을 잇는 서해안 ‘전기 고속도로’ 사업은 이후 한반도 해안의 전력망을 U자형으로 확장하는 해상 전력망 구축의 초석이 된다.

이 책은 한국형 해상 전력망 ‘U-그리드’를 통해 전기를 둘러싼 송전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전략을 제안한다.

전기 생태계를 보는 새로운 눈

이 책은 전력망이라는 딱딱하고 기술적인 주제를 위기–수요–기술–전략–미래로 이어지는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본다.

또한 오션 그리드의 핵심이 되는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 초고압 직류 송전) 기술을 전력망 문제를 해결할 공학적 해법으로 제시하며, 해저 케이블, 변환 설비, 제어·보호 시스템 등으로 구성된 전력망 산업의 생태계를 함께 조망한다. 이를 통해 전력망은 첨단 제조업과 기술경쟁력이 한데 결합된 새로운 성장 산업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특히 ‘전기의 시대 리더 기업’들을 매 장마다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글로벌 전력망 구축을 이끌고 있는 주요 플레이어들의 역할과 전략을 전력 산업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주민을 반대자에서 주주로: 유럽이 보여 준 길

그렇다면 전력망 확충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사회수용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사례는 이를 해결할 실마리를 보여 준다.

이 지방에서는 발전 사업자가 일정 금액을 지역 펀드에 납부하게 되어 있는데, 그 펀드는 마을의 학교, 도서관 등의 시설과 청년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해 사용된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에게 지역의 풍력 발전에 투자할 수 있는 권리가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덕분에, 이들이 발전소의 주주가 된다는 점이다. 이는 풍력발전의 이익이 주민 공동의 자산이 되는 순간이다.

유럽 각국은 이러한 주민 참여를 도입해 현재 새로운 전력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0조 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면서 2038년까지 송전망 구축을 위한 비용까지 새로 조달해야 하는 한국전력에게 이러한 유럽의 사례는 비용과 사회수용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한다.

이 책은 유럽의 전력망 전략을 단순한 모범 사례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지리적·산업적 조건에 최적화된 해법으로 재구성한 방안을 설명한다.


한국 전력망의 패러다임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다

해상 전력망으로 전력망의 패러다임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이 패러다임의 전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한국 독자들의 피부에는 와닿지 않을 것이다.

전력 산업의 특성상 기술적인 내용이 많고, 이와 관련된 기업 역시 일반 대중과 접촉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 의미를 빠르게 깨달을수록AI 시대와 기후 위기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단방향 송전에서 더 나아가 이제 양방향으로 전기를 보내며 더욱 광대한 전력망을 내다보는 새로운 전력 기술을 통해, 한국은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잇는 동북아 그리드의 중심으로서 나아가고 있다.

한국형 해상 전력망 U-그리드 전략은 단순히 전기를 보내는 방법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기술·산업·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새로운 전력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 책은 그 전환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한국 전력 산업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각계의 반응 쏟아져

공동저자인 박영상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술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근무하며 반도체, 로봇, 산업입지, 인력과 관련된 산업 정책 전반을 담당했다.

재직 중 경영학과 기술정책학을 공부하면서 기술·산업·제도와 함께 사회를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확립했다. 공직 이후에는 사모펀드(PEF) 케이스톤파트너스 부대표로 재직하며 투자와 기업 전략을 경험했고, 투자컨설팅사를 창업해 산업·인프라·에너지 분야에 대한 자문과 투자 활동을 수행했다.

현재는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부회장으로서 해상 전력망과 초고압 직류 송전(HVDC) 산업 생태계 조성, 민관협력 기반의 전력망 구축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과 AI 시대를 맞아 전력망을 기술·산업·정책·금융이 결합된 국가 전략 인프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집필과 자문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책에 대한 평가는 뜨겁다.

구본규 LS전선 대표이사(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회장)는 "에너지 산업의 방향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통찰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전력망은 이제 보조적인 인프라의 지위를 넘어서,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자산이 되었다. 이 책은 해저 케이블과 HVDC 산업을 포함한 전기 고속도로의 미래를 산업 현장의 시각에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고 했다.

박기영 단국대 석좌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는 "전력 공급의 다변화와 수요 급증에 따른 대정전 위험이라는 현실 속에서 책은 전력망을 어떤 수단과 거버넌스로 추진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짚어 낸다. 에너지 전환과 전력망 문제는 이제 기술이나 정책을 넘어 국가 전략의 영역이다. 전력 수급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시사점을 제공할 만한 책"이라고 평했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교수(대한전기학회 회장)는 "AI와 전기화 시대를 맞이해 전력망은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 연구 주제가 되었다. 책은 해상 전력망을 중심으로 기술·산업·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보기 드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호평했다.

이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