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지나는 유조선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17일(현지시간) 자정 무렵, 아랍에미리트(UAE) 해안에서 약 24해리 떨어진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상에서 유조선 2척이 충돌, 화재가 발생했다.
호르무즈해협은 전세계 원유의 20%가 통과하고,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원유의 7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로이터 블룸버그통신 FT 등 외신에 따르면 라이베리아 선적의 초대형 유조선 '프론트 이글(Front Eagle)'호와 인도 선적의 소형 유조선 '아달린(Adalynn)'호가 충돌했다.
프론트 이글호는 이라크산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아달린호는 빈 선박 상태로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향하고 있었다.
충돌 직후 아달린호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인명 피해나 대규모 기름 유출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UAE 해안경비대가 아달린호 승무원 24명을 구조했으며, 프론트 이글호의 승무원도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프론트 이글호 역시 갑판에 화재가 발생했지만, 신속하게 진압되었다.
항행판단 착오 vs GPS 교란
사고 원인으로 UAE 에너지부는 이번 충돌이 선박 중 하나의 `항해 판단 착오(navigational misjudgment)"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러 외신은 이번 사고의 배경에 'GPS 교란'이 있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이 격화되면서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광범위한 전자 신호 교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 해양정보센터(JMIC)와 영국 해양무역기구(UKMTO)는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 항구 인근에서 시작된 전자 신호 교란 보고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프론트 이글호는 사고 직전 GPS 상 위치가 수십 킬로미터 이상 갑자기 이동하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GPS 교란이 자동 조종 시스템의 항해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반면, 선박 보험사 및 일부 해양 전문가들은 GPS 교란보다는 항해 오류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이스라엘의 드론 및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자국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전파 방해 작전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는 민간 선박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과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을 공격하거나 나포한 전력이 있어, 이번 사고가 이란의 '회색지대 전술(군사적 대응이 어려운 저강도 도발)'의 일환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은 이번 충돌 사고나 전자 신호 교란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원유수입의 70%가 통과하는 해협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오가는 요충지다. 이번 사고로 인해 국제 유가 급등과 해운 운송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일부 선박들은 호르무즈 해협 우회를 고려하고 있으며, 해당 해역을 통과하는 선박 수가 소폭 감소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나라로 오는 유조선의 70%나 이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이 수시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 원유 수급을 위한 대체 수입 방안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며 "이재명 정부에서 주목하는 북극항로도 한 대안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