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고대 암석에는 대기 중 산소 증가에 대한 중요한 증거가 담겨 있다. 연구진은 이 암석에서 황 질량 독립 분별 작용의 소멸
(the disappearance of sulfur mass-independent fractionation)을 관찰했는데, 이는 대산소 사건(GOE)의 증거다. (사진: 다니엘 헨츠, ©우즈홀 해양연구소)



바나듐이라는 금속의 흔적을 추적했더니, 대기에 산소가 생기자마자 바다도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빠르게 산소로 가득 찼고, 덕분에 우리 같은 복잡한 생물들이 태어날 준비가 일찍 끝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최근 실린 Rapid oxygenation of the shallow ocean during the Great Oxidation Event 제하의 기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이 논문은 지구 역사의 전환점인 대산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 GOE) 당시, 대기 중의 산소가 해양으로 얼마나 빨리 흡수되었는지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견된 약 23억 년 전의 흑색 셰일(Black Shales)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특히 바나듐(Vanadium) 안정 동위원소의 비율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상승한 직후, 불과 수백만 년 이내(지질학적 관점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에 얕은 바다까지 산소화가 진행되었음을 밝혀냈다.

이는 지구 초기 생명체가 산소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고리를 제공하는 한편 외계 행성 탐사에 있어, 어느 행성의 대기에서 산소가 발견된다면 그 행성의 바다에도 산소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바나듐 동위원소는 과거를 보여주는 '화학적 기록계'

바나듐(Vanadium)이라는 금속 원소는 바닷속에 산소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변한다.

산소가 없을 때 바나듐은 바닷물 속에 그대로 녹아 있지만 산소가 생길 때 바나듐은 산소와 결합하여 특정 형태가 되고, 바닥에 가라앉아 흑색 셰일(진흙이 굳은 돌)이라는 바위 속에 갇히게 된다.

이때 바나듐은 무거운 것(51V)과 가벼운 것(50V) 두 종류(동위원소)가 있는데, 산소 농도에 따라 돌 속에 쌓이는 비율이 달라진다. 연구진은 남아프리카의 아주 오래된 바위를 깎아 이 비율을 조사했고, 이를 통해 특정 시점이 불과 수백만년만에 바다에 산소가 확 들어왔다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년으로 추정되는데, 지구 역사 전체를 24시간으로 가정하면, 수백만 년은 약 1~2분 정도에 불과하다.

보통 대기에 산소가 생겨도 넓고 깊은 바다 전체에 그 산소가 녹아 들어가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대기에 산소가 차오르자마자 바다도 거의 동시에(지구 역사 관점에서) 산소로 가득 찼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

바다가 생각보다 빨리 산소화되었기 때문에,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복잡한 생명체(동물 등)가 진화할 수 있는 환경이 훨씬 일찍 갖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주 멀리 있는 행성을 관찰할 때, 그 행성의 '대기'에서 산소를 발견한다면 "저 행성의 '바다'에도 이미 산소가 가득하겠구나"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바다에 산소가 있다면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도 훨씬 높아진다.

윤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