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트해양연구소의 심해 잠수정(ROV) 수바스티앤(SuBastian)이 성공적인 임무수행을 마치고 연구선 팔코르(Falkor) 위로 올라오고 있다. <사진=슈미트해양연구소>



세계 해양 및 기상 분야를 이끌고 있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구조조정으로 관련 연구 및 국제교류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는 NOAA의 일기예보로 인해 민간사업이 위축되고 있고, NOAA 연구의 핵심 주제인 지구온난화에 대해 `사기'라고 규정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추가 조정을 압박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미국 과학자들의 탈 미국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고, 관련 자료의 용도 폐기마저 우려된다.

독일 등지에서는 미국 NOAA가 제공하던 데이터를 다운받아 글로벌 공동연구의 핵심 역할을 대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기류을 활용해 우리 해양과학기술 연구를 한단계 끌어올리고 국제적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와관련해 이재학 지오시스템리서치 고문(해양한림원 석학회원)은 최근 열린 해양한림원 주최 심포지엄서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10위권으로 올라섰지만 해양과학기술과 관련한 국제기여도는 매우 낮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인류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지표면의 70%이상을 차지고 있는 해양 연구에 국가적으로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다 연구에 빠진 억만장자들

시사에 밝은 이라면 `X프라이즈 재단'이라는 비영리단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재단은 인류 기술 개발 목적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이다. 주로 상금을 걸고 발명품을 개발하는 대회를 진행한다.

1996년 설립자 피터 디아만디스는 민간 우주선 개발 콘테스트에 1000만 달러 상금을 내걸면서 첫번째 엑스프라이즈 대회를 시작했다. 이는 블루오리진(제프 베이조스), 스페이스X(일론 머스크) 등 민간 우주기업에 영향을 미쳤다.

대회는 주로 생물다양성, 기후 및 에너지, 딥 테크(Deep Tech) 및 양자기술, 식량 및 쓰레기, 건강, 우주탐사 분야로 나뉜다. 핵심을 이루고 있는 생물다양성, 기후, 에너지 분야는 모두 바다 연구를 근간으로 이뤄지는 분야다.

대표적으로 2021년 일론 머스크가 총상금 1억달러의 탄소제거대회를 열었는데, 2050년까지 10기가톤의 탄소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년에는 총상금 1억19만 달러의 담수화 기술대회가 개최됐다.

막대한 부를 일군 이들이 거액의 상금을 내걸고 인류가 직면한 지구 위기를 구하는 `영웅'을 찾아나선 것이다. 이 콘테스트에서 채택된 연구에 대해 보통의 연구비와는 차원이 다른 막대한 예산이 제공된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바다 연구에 거액을 희사하는 글로벌 타이쿤들을 금세 발견하게 된다.

몬터레이베이수족관 전경 <몬터레이베이수족관>


미국의 유명한 컴퓨터회사인 휴렛 팩커드의 공동설립자인 데이비드 팩커드는 1978년 약 5500만달러를 지원해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시에 몬터레이베이수족관 및 연구소(MBARI)을 만들었다. 1984년 처음 개장했을 당시 켈프숲을 최초로 전시했으며 백상아리를 처음으로 전시했다. 몬터레이연구소는 해양생물 분야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다. 팩커드 부부에 의해 운영되다가 지금은 딸에게 넘겨졌다.

구글 회장을 역임한 에릭 슈미트 회장은 슈미트해양연구소를 만들어 바다 탐사를 이끌고 있다. 슈미트해양연구소는 현재 심해 탐구를 통해 새로운 종을 계속해서 세상에 알리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역할이 끝나가는 배를 인수해서 탐사선으로 개조한 뒤 최고급 ROV(심해 탐사정)을 탑재하면서 심해 관측과 해저 매핑(mapping)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내는 중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니폰재단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사사카와 로이치가 도박사업으로 번 돈으로 만든 비영리재단인데, 해저 매핑과 심해생물 탐사에서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지도는 전세계 누구나 찾아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일본의 위상제고에 기여한다.

이재학 박사는 "미국 일본 뿐 아니라 프랑스 노르웨이 호주 등 많은 나라의 부자들이 만든 비영리기관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하고, 인류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바다에 대해 재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게 매우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한국해양한림원 심포지엄에서 이재학 지오시스템리서치 고문 겸 해양한림원 석학회원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해양한림원>



국제사회 노력에 우리나라도 기여해야

인류가 바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의 상당 부분은 아르고(Argo) 프로젝트 덕이다. 관측장비`프로파일링 플로트'를 전세계 바다에 뿌려 깊은 바다까지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면서 온도 염도 및 해류를 관찰한다. 이 데이터는 인공위성에 전달돼 각 나라의 연구자들 손에 고스란히 도달한다.

학자들의 모임에서 제안된 이 프로젝트는 2007년 11월 마침내 전세계 바다에 3000개의 프로파일링 플로트를 뿌리면서 바다에 대한 귀중한 데이터를 뽑아내고 있다.

하지만 인류사회의 공동노력에 비해 우리나라의 기여도는 매우 낮다. 2018년의 경우 미국이 172개의 프로파일링 플로트를 바다에 뿌린 반면 우리나라는 불과 한 대에 그쳤다. 이후 한국의 기여도가 다소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비중은 낮은 편에 머물고 있다.

아르고 프로젝트에 의해 전세계 바다에 뿌려지고 있는 `프로파일링 플로트'를 연구원이 지켜보고 있다. 이 기기는 바다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해수의 온도 염분도 해류를 측정해 인공위성에 쏘아준다. <사진=아르고 프로젝트>


이재학 박사는 "바다는 기후온난화에 의한 열량의 90%를 흡수하고 있어 바다의 자연현상에 대한 인류사회의 지적 갈증은 커지고 있다"며 "이러한 국제사회의 조류에 부응해 우리나라도 해양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기술 예산 구조조정에 따라 미국의 인재와 연구자료의 해외 유출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관련해 해양학계의 한 인사는 "그간 국제공동연구는 미국이 주도해 왔기 때문에 미국의 위상이 줄어드는 시기에 우리의 비중을 높힌다면 해양과학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크게 제고될 것"이라며 "다만 우리나라의 연구예산이 지극히 경직적이어서 추가적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