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가 어린 백상아리를 뒤집어 마비시키는 지능적 사냥 방식을 보여주는 장면. <사진 출처= 프론티어스 인 마린 사이언스>

미국 동남부 멕시코 만(Gulf of California)에서 범고래(Orca)가 어린 백상아리(Juvenile White Shark)를 사냥하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다.

범고래가 백상아리를 공격하는 사례는 남아프리카 등지에서 보고된 바 있지만, 멕시코 캘리포니아 만에서 어린 백상아리를 반복적으로 사냥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포착되고 문서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연구는 11월 3일자 프론티어 인 마린 사이언스지에 게재됐다.

이에 따르면 2020년과 2022년에 걸쳐 멕시코 라파스(La Paz) 근처에서 범고래 무리가 사냥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범고래들은 여러 마리가 협력하여 어린 백상아리를 수면으로 몰아간 후, 배를 위로 향하도록(뒤집어) 밀어 올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상어를 뒤집으면 강장 부동화(Tonic Immobility)라는 일시적인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상어를 무기력한 상태로 몰아넣어 사냥을 용이하게 한다.

범고래들은 상어를 마비시킨 후, 백상아리 몸에서 간(liver)만을 정확하게 떼어내어 섭취했다. 간은 지방과 칼로리가 풍부하여 고도로 영양가가 높은 기관이다.

획득한 간은 무리 구성원들, 심지어 새끼(calf)를 포함하여 공유됐다. 이는 이 사냥 기술이 대를 이어 전수되는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의 결과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사냥 방식은 범고래의 높은 지능, 전략적 사고, 그리고 특정 먹이에 맞춰 사냥 기술을 개발하는 행동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기존 연구 대비 `진일보'

범고래가 백상아리를 사냥하는 행위는 남아프리카, 특히 파라크루이저(Port and Starboard)와 같은 특정 범고래 무리에서 주로 관찰되고 연구됐다.

이 연구는 이러한 포식 행위가 멕시코 캘리포니아 만의 목테주마(Moctezuma) 무리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최초로 공식 문서화했다. 이는 범고래의 사냥 행동이 국지적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개체군으로 확산될 수 있는 행동적 적응 능력을 보여준다.

범고래가 상어를 공격하고 간을 먹는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사냥 전술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명확하게 포착하기 어려웠다.

이 연구는 범고래가 어린 백상아리를 뒤집어(배를 위로 향하게 하여) 강장 부동화(Tonic Immobility) 상태를 유도하는 정교한 전술을 영상과 사진 증거로 기록했다. 이는 범고래가 단순한 힘의 우위가 아닌, 상어의 생리적 약점을 이용하는 지능적인 사냥 전략을 사용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연구는 사냥한 간을 새끼(calf)를 포함한 무리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는 이 고도의 사냥 기술이 사회적 학습을 통해 범고래 세대 간에 전수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이 연구는 포식 행위의 지리적 확장을 입증하고, 범고래의 사냥 기술 중 가장 정교한 전술(강장 부동화 유도)을 영상으로 명확하게 기록하여 범고래의 지능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

연구진은 엘니뇨와 같은 해양 변화가 백상아리의 번식지(nursery zone)를 바꾸게 하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미숙한 어린 상어들이 범고래의 사냥 영역에 더 많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성체 백상아리는 범고래가 나타나면 해당 지역을 수개월간 대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어린 상어들은 이러한 포식 위협에 대해 '순진'할 수 있어 해당 지역 백상아리 개체군에 새로운 압박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윤구현기자